
서론: “늘 싸게 거래되던 시장”이 바뀌기 시작한 일본, 한국에 주는 질문
Korea Discount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또 다른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Japan Discount”입니다. 한때 일본 증시는 “좋은 회사도 싸게 거래되는 시장”의 대표적인 사례였습니다. 버블 붕괴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장기 침체, 낮은 성장률, 고령화, 그리고 복잡한 계열·지분 구조 속에서, 일본 기업들은 글로벌 동종 업종 대비 낮은 PER·PBR로 거래되는 일이 흔했습니다. “일본 주식은 싸지만, 싸게 거래될 만한 이유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일본 증시는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도쿄 증권거래소(TSE)가 PBR 1배 미만 기업들에게 자본 효율성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 계획을 요구하고, 일본 정부가 기업지배구조·스튜어드십 코드·자본시장 개혁을 꾸준히 밀어붙이면서, 외국인 자금이 다시 일본 시장으로 유입되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Japan Discount”라는 말은 여전히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예전과는 다른 시장이 되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 변화는 Korea Discount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일본이 겪었던 할인은 한국과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어떤 점에서 달랐을까?”, “일본이 지배구조와 자본 효율성을 개선하면서 밸류에이션이 바뀐 과정에서,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포인트는 무엇일까?”, “Japan Discount가 일부 완화된 것처럼, Korea Discount도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입니다.
서론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Korea Discount를 한국 내부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미 비슷한 고민을 먼저 겪고, 지금도 해결하는 중인 나라가 있었다”는 관점에서 한 번 더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일본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장기간 디스카운트에 시달리던 시장이 어떤 개혁을 통해 변화를 시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Korea Discount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제 본론에서는, 먼저 Japan Discount의 배경과 개혁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고, 그 경험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본론: Japan Discount의 원인과 개혁, 그리고 Korea Discount에 주는 시사점
1) Japan Discount의 배경: 좋은 회사도 싸게 거래되던 이유
일본 기업들이 오랫동안 “싸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단순한 경기 침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구조적인 요인이 여러 개 겹쳐 있었죠.
첫째, 낮은 자본 효율성입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 기업들은 “위기에 대비해 현금을 많이 들고 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막대한 현금성 자산·유가증권을 쌓아두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주주환원이나 성장 투자에 쓰지 않았고,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선진국 대비 만성적으로 낮았습니다. “돈은 벌지만,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는다”는 인식은 낮은 PBR로 이어졌습니다.
둘째, 복잡한 지분 구조와 안정 주주(Stable Shareholder) 문화입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기업 집단인 ‘케이레츠(계열 금융·제조사가 서로 지분을 들고 있는 구조)’는 경영권 안정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외부 견제와 시장의 감시 기능을 떨어뜨렸습니다. 기업들이 서로의 주식을 들고 있는 교차 지분 구조 속에서는, 경영진 교체·사업 구조조정·주주환원 확대 같은 결정이 잘 일어나지 않았고, 이는 “변화하지 않는 기업”이라는 인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셋째, 소극적인 주주환원과 약한 지배구조입니다. 일본 기업들 역시 오랫동안 배당성향이 낮았고, 자사주 매입·소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사회 독립성도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고, 외부 주주의 목소리보다는 내부 임원·은행·거래처의 이해관계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주주가 기업이 벌어들인 과실을 온전히 공유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합치면, Japan Discount의 메시지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은 기술도 있고 돈도 벌지만, 자본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고, 지배구조가 변화를 막으며, 주주에게 충분히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느 정도 할인은 정당하다.” 어딘가 익숙한 문장이지 않나요? 구조는 다르지만, Korea Discount의 배경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2) 일본의 개혁: 지배구조·스튜어드십·거래소 규칙의 삼각편대
일본이 장기간 디스카운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시도한 개혁은 한 번에 끝난 것이 아니라, 10년 넘게 이어진 꾸준한 흐름이었습니다. 큰 축만 간단히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2014년)
기관투자자가 “고객의 자산을 맡은 집사(steward)”로서 기업의 지배구조·자본 정책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는 원칙이 도입되었습니다. 연기금·자산운용사들은 의결권 행사를 공개하고, 주주총회에서 배당·이사 선임·자본정책에 대해 실제로 반대표를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기업에 “장기 자본도 이제 그냥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었습니다.
② 기업지배구조 코드 도입(2015년) 및 개정
이사회 독립성, 사외이사 비율, 투명한 정보공개, 주주와의 대화(IR) 강화 같은 원칙을 상장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룰북”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단순 권고 수준에서 출발했지만, 거래소·지수 편입·투자자 요구와 결합되면서 점점 실질적인 압력이 되었고, 많은 기업들이 사외이사 확대, 교차 지분 축소, 지배구조 보고서 발간 등을 추진하게 만들었습니다.
③ 도쿄 증권거래소 재편과 PBR 1배 압박(2020년대)
최근 들어 가장 큰 화제가 된 것은, 도쿄 증권거래소가 주요 상장사들에게 자본 효율성 개선(특히 PBR 1배 미만 기업 대상)을 강하게 요구한 것입니다. PBR 1배 미만 상태가 지속되는 기업에는 ROE 개선, 자사주 매입·소각, 비핵심 자산 매각,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시장에 설명하라는 메시지가 나왔습니다. “PBR 1배 아래로 방치하지 말라”는 신호는, Japan Discount의 상징이었던 “만성 저PBR 상태”에 직접적으로 칼을 대는 조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축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행동을 바꾸고, 기업지배구조 코드는 기업의 틀을 바꾸며, 거래소 규칙은 “자본 효율성과 시장 밸류에이션을 직접 연결”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일본은 구조를 바꾸기 위해 꽤 오랜 시간 방향성을 유지해 왔다”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3) Korea Discount에 대한 시사점: 일본과 비슷하지만, 그대로 복붙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험은 한국에 어떤 힌트를 줄까요? 몇 가지 포인트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① “지배구조 + 스튜어드십 + 거래소 룰”이라는 삼각구조의 필요성
한국에서도 지배구조 보고서, 스튜어드십 코드, 코리아 밸류업 정책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이 세 요소가 하나의 “구조적 프로그램”으로 잘 묶여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 사례는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 기업지배구조 기준 상향 → 거래소·지수 편입 기준과 연계”라는 흐름이 만들어질 때, 시장이 “이번에는 다르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국도 Korea Discount를 진지하게 줄이려면, 이 세 축이 느슨한 선언이 아니라, 서로 맞물리는 기어처럼 작동해야 합니다.
② “PBR 1배 아래는 부끄러운 상태”라는 인식 만들기
일본에서 도쿄 증권거래소의 PBR 1배 압박은 상징성이 큽니다. 숫자 하나를 기준으로 삼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자본 효율성과 주주환원에 대한 거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한국도 “저PBR 기업 리스트 만들기”를 넘어서, 일정 기간 이상 PBR 1배 미만 상태를 방치하는 기업에 대해 자본 효율성·주주환원 계획을 요구하고, 이를 공시·IR·지수 편입과 연계하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산업·사이클 차이가 크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1배를 기준으로 잡을 수는 없겠지만, “지속적인 초저PBR 상태는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공감대가 중요합니다.
③ 기관투자자(특히 연금)의 역할 강화
일본에서 연기금·기관투자자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해 “말하는 주주”로 바뀐 것은, 지배구조 개혁의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한국 역시 국민연금·퇴직연금·보험·공제회 등 장기 자금이 지배구조·주주환원과 연계된 투자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의결권 행사 내역과 이유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며, 필요할 때는 실제로 반대표와 투자 축소로 연결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일본처럼 할 거다”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부터 조금씩이라도 움직이겠다”는 선언이 중요합니다.
④ 그러나 한국은 일본과 다른 리스크도 있다
단, 일본과 한국을 완전히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은 재벌·총수 일가 중심 지배구조가 훨씬 강하고, 지정학 리스크(북한·미·중 갈등 등)가 더 직접적이며, 정책·규제의 변동성이 일본보다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대로, 내수·인구 구조 측면에서 이미 깊은 고령화 국면에 들어선 일본과 달리, 한국은 아직 산업 구조 재편과 신성장 동력 발굴 여지가 더 크다는 점에서 “업사이드 잠재력”도 존재합니다. 즉, Japan Discount를 줄인 방법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없지만, 방향성 자체는 충분히 참고할 수 있는 셈입니다.
⑤ 개인 투자자에게 주는 힌트: “일본에서 일어난 일,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일본 사례는 한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수십 년간 싸게 거래되던 시장도, 지배구조·주주환원·자본 효율성 개혁이 맞물리면, 언젠가는 리레이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정확한 시점을 맞출 수는 없지만, 한국에서도 비슷한 구조적 변화가 조금씩 쌓인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역시 일부 완화될 수 있습니다. 그때 가장 큰 수혜를 보는 것은, 디스카운트가 심할 때부터 한국 지수·가치·배당·밸류업 ETF를 연금 계좌 등에서 꾸준히 모아온 사람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30년” 동안에도 꾸준히 투자한 이들이 있었듯이 말입니다.
결론: “우리는 일본의 과거를 보고 있는가, 일본의 현재를 향해 가고 있는가”
Japan Discount와 Korea Discount를 나란히 놓고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듭니다. “좋은 회사도 싸다”,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이 약하다”, “내부 논리에 갇혀 변화가 더디다”는 비판은 두 나라 모두가 오랫동안 들어온 말입니다. 차이는, 일본은 그 비판을 지난 10여 년 동안 제도·거버넌스·거래소 룰의 변화로 조금씩 녹여왔고, 그 결과로 밸류에이션과 자금 흐름에 일정 부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이제 막 비슷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단계에 가깝습니다.
결론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일본의 과거를 반복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일본이 어렵게 열어 놓은 현재의 문을 뒤따라가고 있을까요?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지배구조·주주환원·정책 예측 가능성·소액주주 보호·스튜어드십 코드·거래소 룰 같은 키워드들이 앞으로 5년, 10년 동안 어떻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지에 따라, Korea Discount의 미래 경로가 달라질 것입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일본이 그랬듯, “싸지만 영원히 싸야 하는 기업”과 “지금은 싸지만 바뀔 수 있는 기업”을 구분해 보는 눈을 기르는 것입니다. 지배구조 개선, 자본 효율성 향상, 배당·자사주 확대, IR 강화 같은 행동을 실제로 하는 기업과 ETF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둘째, Japan Discount의 역사에서 보았듯, 구조 개혁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 번 방향이 잡히면 시장은 결국 그 변화를 가격에 반영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시간의 간극”이 바로 장기 투자자의 기회입니다.
정책·제도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은 일본의 시행착오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선언적 구호보다 행동과 인센티브 설계에 집중할 것, 기업·연금·거래소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지 않고 하나의 로드맵을 공유할 것, 단기 지수 부양이 아닌 장기 신뢰 회복을 목표로 할 것 등입니다. 이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움직인다면, Korea Discount는 단순히 “한국은 원래 싸다”는 체념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바뀔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토론·발표 맥락에서 본다면, Japan Discount와 Korea Discount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 이야기만 할 때보다 훨씬 입체적인 논의를 가능하게 합니다. “과거 일본이 겪었던 문제 – 지금 한국이 겪는 문제 – 일본 개혁의 결과 –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흐름으로 이야기하면, 단순 비판을 넘어 “어떤 방향이 더 나은가”를 생각해 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투자자로서든, 토론 참가자로서든, “남의 실패와 변화”에서 힌트를 얻어 우리 시장을 보는 것은 꽤 괜찮은 연습입니다. Korea Discount를 이야기할 때, 일본이라는 거울을 한 번쯤 옆에 놓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