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시장 전체에 깔린 “구조적 할인”입니다. 이 할인은 답답함과 동시에 기회를 함께 줍니다. 한쪽에서는 “그래서 난 그냥 미국만 한다”는 말이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내 삶과 통화가 모두 원화인데 한국을 버릴 순 없다”는 고민이 따라옵니다. 이 두 감정이 계속 부딪히다 보면, 계좌는 방향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쉽습니다. 이때 유용한 프레임이 바로 해외 자산과 국내 자산을 양 끝에 두고 설계하는 ‘바벨 전략’입니다. 한쪽 끝에는 글로벌 코어 자산(주로 미국·선진국 지수)을, 다른 한쪽 끝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걸린 국내 자산(지수·가치·배당 ETF)을 두고, 가운데 애매한 자산은 최소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글에서는 “왜 한국 투자자는 바벨 전략이 특히 잘 맞는지”, “해외·국내를 어떤 비율과 역할로 가져가면 좋은지”, “실전에서 어떻게 리밸런싱할지”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설계 방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서론: 올인 해외 vs 애국 투자 사이에서, 바벨 전략이 필요한 이유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한국은 답 없다, 미국만 사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그래도 우리나라가 망하면 미국 주식도 의미 없지 않냐, 한국을 버릴 순 없다”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둘 다 나름의 논리가 있고, 둘 다 100% 맞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문제는 이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계좌는 한 번은 미국에 몰빵, 또 한 번은 국내 반등 기대에 올인하는 식으로 계속 뒤집히는 패턴입니다. 이건 멘탈에도, 수익률에도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분명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지배구조, 낮은 배당, 정책·규제의 불확실성, 소액주주 보호의 약함 등, 싸게 거래될 만한 이유가 실제로 존재합니다. 동시에, 그 할인율이 과도한 구간도 분명 있습니다. “이 정도 실적과 자산, 기술력을 가진 회사·시장치고 너무 싸다” 싶은 시기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옵니다. 해외 자산, 특히 미국·선진국 지수는 장기 성장성·통화 신뢰·제도 안정성 측면에서 분명 매력적인 “코어 자산”이고, 한국 자산은 “싸지만 구조적 리스크가 있는 기회 자산”에 가깝습니다.
바벨 전략은 이 현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국 시장은 구조적 약점이 있지만, 동시에 디스카운트 덕분에 장기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선진국 자산은 코어로 가져갈 만한데, 지금 밸류에이션을 보면 언제나 싸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굳이 둘 중 하나를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양쪽을 “역할을 나눠서 동시에 가져가는 설계”가 더 합리적입니다. 한쪽 끝에는 글로벌 코어(미국·선진국 인덱스, 글로벌 채권), 다른 한쪽 끝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구간의 국내 지수·가치·배당 ETF를 두고, 중간에 애매한 자산(테마 몰빵, 과도한 레버리지, 단기 테마 펀드 등)은 최소화하는 구조 말입니다.
서론에서 정리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때문에 한국을 버리기도 그렇고, 애국심만 믿고 국내 올인하기도 불안하다면, “해외 vs 국내” 싸움을 그만두고 “해외 + 국내 바벨”로 시야를 바꾸는 게 좋다는 것. 바벨 전략은 마치 한 손에 우산(글로벌 코어), 다른 손에 할인 쿠폰(코리아 디스카운트)을 쥐고 걷는 것과 비슷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이, 날씨가 개고 세일 시즌이 오면 쿠폰이 역할을 하는 구조. 이제 이 바벨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해외·국내 바벨 전략, 이렇게 설계해 보자
1) 바벨의 왼쪽: 글로벌 코어 자산의 역할 정의하기
먼저 바벨의 한쪽 끝에는 “계좌의 기둥” 역할을 하는 자산을 둡니다. 보통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 미국·선진국 주식 인덱스 ETF (예: S&P500, 나스닥 100, MSCI World 등)
- 글로벌·선진국 채권 ETF (달러·유로·글로벌 채권 지수 등)
- 필요하다면 일부 금·리츠 등 방어 자산
이 자산들의 역할은 세 가지입니다.
① 장기적으로 세계 경제 성장과 함께 우상향하는 “기본 수익 엔진”
② 원화가 약세일 때 환차익을 통해 계좌 변동성을 완화하는 “통화 헤지”
③ 한국 시장이 길게 부진할 때도 포트폴리오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안정 축”
바벨 전략에서는 이 글로벌 코어 자산 비중을 대체로 50~70% 범위에서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험 성향과 나이, 소득 안정성에 따라 조정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이 축 하나만으로도 포트폴리오가 망하지 않을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즉, 한국이 길게 부진하거나,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생각보다 더 깊어져도, 이 글로벌 코어 축이 최소한의 성장과 방어를 책임져 주어야 합니다.
2) 바벨의 오른쪽: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노리는 국내 자산 설계
다른 한쪽 끝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활용할 자산을 둡니다. 이쪽은 “기회 축”이자 “할인 구간 장기 매수 축”입니다. 구성은 대략 이렇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 코스피·코스피200·코스닥 등 시장 대표 지수 ETF
- 저PBR/가치 ETF, 고배당 ETF, 밸류업/지배구조 개선 테마 ETF
- (리스크 감당 가능 시) 일부 섹터 ETF(반도체, 2차전지, 금융 등) 비중
이 국내 축의 역할은,
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과도한 구간에서 싸게 모아 두었다가, 언젠가 리레이팅이 올 때 과실을 받는 “레버리지 없는 장기 콜옵션”
② 내 생활 통화(원화)와 경제환경에 직접 연결된 자산으로서의 “홈 마켓 노출”
③ 배당·주주환원 개선, 지배구조 개혁 등 구조 변화의 수혜를 받는 “개혁 베타” 역할입니다.
비중은 위험 성향에 따라 30~50% 정도에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늘 들고 가되, 싸질수록 조금씩 비중이 늘어나게 설계하는 것”입니다. 즉, 코스피가 크게 빠지거나, 국내 가치·배당 ETF가 장기 박스권 하단을 찍을 때마다, 바벨의 한쪽 끝(국내 축)에 조금씩 더 무게를 실어주는 방식입니다.
3) 바벨 비율 예시: 성향별 포트폴리오 그림
구체적인 비율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예시를 몇 가지 들어보면 감이 옵니다.
① 안정형 (글로벌 코어 70% / 국내 30%)
- 해외(70%): 미국·선진국 주식 인덱스 50%, 글로벌 채권 20%
- 국내(30%): 코스피200 ETF 15%, 가치/고배당 ETF 10%, 밸류업 ETF 5%
② 중립형 (글로벌 60% / 국내 40%)
- 해외(60%): 미국·선진국 주식 인덱스 50%, 글로벌 채권·리츠 10%
- 국내(40%): 코스피·코스닥 지수 ETF 20%, 가치/배당 ETF 15%, 섹터 ETF 5%
③ 공격형 (글로벌 50% / 국내 50%)
- 해외(50%): 미국·선진국 주식 인덱스 50% (채권 비중 최소)
- 국내(50%): 시장 대표 지수 25%, 가치·밸류업 ETF 20%, 섹터 ETF 5%
핵심은 “나의 전체 자산 구조”까지 감안해서 비율을 잡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퇴직연금이 대부분 한국 자산에 묶여 있다면, 개인 투자 계좌에서는 해외 비중을 좀 더 높게 잡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 복지나 퇴직연금이 글로벌 펀드 위주라면, 개인 계좌에서 한국 비중을 조금 더 가져가는 식으로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4) 리밸런싱 룰: “한국이 너무 싸질 때”와 “해외가 너무 비쌀 때” 활용하기
바벨 전략의 묘미는 “왼쪽과 오른쪽의 비중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리하는 데 있습니다. 기본 룰을 몇 가지 정해 볼 수 있습니다.
- 연 1회 정기 리밸런싱: 매년 같은 달에, 해외:국내 비율이 목표(예: 60:40)에서 ±5~10% 이상 벗어나 있으면 다시 맞추기
- 한국 급락 구간 추가 매수: 코스피·국내 가치 ETF가 6~12개월 기준으로 -20% 이상 빠진 구간에는, 국내 축 비중을 5~10%p 정도 늘리는 “전략적 리밸런싱” 실행
- 해외 과열 구간 비중 축소: S&P500 등 미국 지수가 급등해 PER·PBR이 과거 평균 대비 크게 높아진 구간에는, 해외 비중을 조금 줄이고 국내·현금·채권 쪽으로 무게를 옮겨 두기
이렇게 리밸런싱 룰을 미리 정해 두면, 뉴스에 흔들리지 않고 “싸질 때 사서, 비싸질 때 파는” 구조를 자동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해지는 위기 구간(외국인 대량 매도, 환율 급등, 정책 불확실성 확대 등)은, 감정상으로는 도망치고 싶지만, 바벨 전략에서는 오히려 국내 축에 조금 더 무게를 실을 타이밍이 됩니다.
5) 주의할 점: 바벨 전략은 “둘 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둘 다 인정해서” 쓰는 것
마지막으로 중요한 경고 한 가지. 바벨 전략을 쓸 때 흔히 빠지는 함정은, “둘 다 무서워서 골고루 사두자”라는 심리입니다. 이건 바벨이 아니라 그냥 분산에 가깝습니다. 바벨 전략의 핵심은 “양 끝단에 명확한 역할을 가진 자산을 두고, 가운데 애매한 것들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 전략을 설계할 때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 해외 코어 축: “이 자산은 내가 한국 시장이 10년 동안 박스피여도, 계속 들고 갈 수 있는가?”
- 국내 디스카운트 축: “이 자산은 싸게 살 수 있는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더 비싸게라도 꼭 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야 바벨 전략이 의미를 갖습니다. 둘 다 불안한데 그냥 찢어서 사두는 것은, 위기 때 둘 다 못 버티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바벨은 겁쟁이 전략이 아니라, “각자 역할과 리스크를 인정한 뒤, 구조적으로 같이 가져가는 전략”에 가깝습니다.
결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버릴 것인가, 바벨의 한쪽 끝으로 활용할 것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국 투자자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던집니다. 하나는 “그래서 난 한국을 안 한다”는 탈출형 선택지, 다른 하나는 “그래도 이 할인은 언젠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활용형 선택지입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벌고, 쓰고, 은퇴할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한국 완전 포기”는 꽤 극단적인 선택입니다. 반대로, 애국심만 믿고 국내에 올인하기에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구조적 리스크들이 너무 크기도 합니다.
바벨 전략은 이 딜레마 사이에서 타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두 현실을 모두 인정하고, 그 위에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세계 경제의 장기 성장과 통화 신뢰를 믿고, 미국·선진국 코어 자산을 한쪽 끝에 둔다. 동시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할인을 기회로 보고, 국내 지수·가치·배당·밸류업 ETF를 다른 한쪽 끝에 둔다. 그리고 위기와 과열의 파도 위에서, 미리 정한 리밸런싱 룰에 따라 양쪽의 비중을 조정한다.” 이게 바벨 전략의 한 문장 요약입니다.
연금저축·IRP 같은 장기 계좌에서는, 바벨 전략의 장점이 더 크게 드러납니다. 해외 코어 자산은 연금 계좌의 기본 수익과 방어를 담당하고, 국내 디스카운트 자산은 “언젠가 올지도 모를 리레이팅”에 대한 옵션 역할을 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길게 이어지더라도, 매년 세제 혜택을 받으며 싸게 모아두고, 구조가 조금씩 개선될 때(배당 증가, 지배구조 개편, 외국인 재유입 등) 그 결실을 나중에 연금 형태로 받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서도 한 줄로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단순히 욕하거나 찬양하지 않고, 가격 신호로 받아들인 뒤, 해외·국내 바벨 전략 안에서 구조적으로 활용하겠다.” 이 한 줄을 마음속 기준으로 세워두면, 뉴스에 흔들리는 일이 훨씬 줄어듭니다. 외국인 매도, 환율 급등, 정책 이슈가 나와도, “아, 지금은 바벨의 어느 쪽 무게를 조금 옮겨야 할지 고민할 타이밍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어쩌면 오랫동안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바벨 전략을 쓰는 투자자에게는 “싸게 많이 모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해외 코어와 국내 디스카운트, 두 축을 어떻게 나만의 바벨로 만들지, 지금 한 번 차분히 설계해 보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의 계좌가, 오늘의 이 설계를 꽤 고맙게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