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와 투자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우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
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소액주주와 투자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우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들

by leeAnKR 2025. 12. 18.
반응형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주로 재벌·지배구조·정부 정책·외국인 자금 같은 ‘큰 손’들의 문제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면, 한국 시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또 하나의 축이 있습니다. 바로 동학개미·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 온 투자문화입니다. 단기 매매와 테마 쏠림, 레버리지·인버스 과도한 활용, 주총·전자투표엔 관심이 거의 없는 문화는, 결과적으로 “이 시장에서는 장기·가치·배당이 잘 안 통한다”는 인식을 강화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고착시키는 데 일부 기여합니다. 이 글은 “개인투자자는 그저 구조의 피해자일 뿐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소액주주의 행동과 투자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해 봅니다.

 

서론: 구조 탓만 하고 있지만, 우리도 그 구조의 일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위에서 아래로”만 바라봅니다. 재벌·총수 일가 중심 지배구조, 낮은 배당성향과 미흡한 자사주 소각, 정책·규제의 불확실성, 외국인 자금의 유출입 패턴 같은 거시적인 요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한국 주식시장의 할인율을 높인다는 분석은 상당 부분 타당합니다. 실제로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합병·분할·유상증자,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반복되는 오너 리스크 사례를 보면, “우리를 싸게 보는 것도 이해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빠져 있는 조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 즉 소액주주와 개인투자자의 행동입니다. 우리는 자주 “구조가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그 구조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그 선택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키웠는지 줄였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돌아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에서 레버리지·인버스·테마주 거래 비중이 높고, 장기 배당·가치 투자보다 단기 급등 종목을 쫓는 문화가 강하다면, 외국인·기관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일까요? “이 시장은 장기 자본이 아니라 단기 투기성 자금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안정적인 장기 자본은 발을 빼고, 더 높은 리스크 프리미엄을 요구하게 됩니다.

또 하나 짚어볼 부분은 소액주주의 ‘침묵’입니다. 우리는 주총 시즌이 되면, 대형 사건이 터진 몇몇 회사에 대해서만 뉴스로 접할 뿐, 내 계좌 속 기업의 주주총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전자투표·서면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 한 표로 바뀌는 건 없다”는 체념이 지배하고, 그 결과 이사회·경영진은 소액주주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문화를 계속 유지하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소액주주를 무시하는 시장”이라고 불평하면서 동시에, 그 시장에서 소액주주로서의 권리 행사에는 매우 소극적인 모순적인 존재가 되곤 합니다.

서론에서 확인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분명 위에서 내려오는 구조의 문제이지만, 동시에 아래에서 올라오는 투자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개인투자자는 구조의 피해자인 동시에, 그 구조를 조금씩이라도 바꿀 수 있는 참여자입니다. “위에서 안 바꿔주니까 우리는 그냥 손해 볼 수밖에 없다”에서 멈추지 않고, “소액주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실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는 것. 이 질문이 본론의 출발점입니다.

본론: 소액주주 행동과 투자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메커니즘

1) 단기 매매·테마 쏠림 문화가 만드는 ‘장기 자본의 부족’
한국 개인투자자 시장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패턴이 있습니다. 하나는 단기 매매 비중이 높다는 점입니다. 하루·일주일 단위로 매매를 반복하고, 주가가 조금만 흔들려도 바로 갈아타는 전략이 흔합니다. 또 하나는 특정 테마·이슈에 과도하게 쏠리는 현상입니다. 2차전지, AI, 정치 테마, 바이오, 우주항공 등 그때그때의 유행에 따라 시가총액이 작은 종목으로 단기간에 자금이 몰렸다 빠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여기에 레버리지·인버스 ETF, 무리한 신용·미수까지 겹치면, 시장은 “장기 가치”보다는 “단기 변동성”이 더 중요하게 움직이는 판이 되기 쉽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장기 자본이 들어올 유인이 줄어듭니다. 배당을 조금씩 늘리며 10년을 보고 투자자를 모으고 싶은 기업이 있다 해도, 시장 전체가 “다음주에 뭐가 오르냐”에만 관심이 있다면, 굳이 그 수고를 할 이유가 적어집니다. 해외 연기금·롱온리 펀드 입장에서도, 한국 시장은 “기초 체력은 나쁘지 않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오래 앉아 있기는 힘든 시장”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집니다. “이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장기 자본이 적으니, 조금 더 싸야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이죠.

2) 의결권을 버려버린 소액주주, 그리고 지배구조 리스크의 고착
지배구조·소액주주 보호 문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그런데 지배구조란 결국 “누가 어떤 룰로 의사결정을 내리는가”의 문제이고, 여기에는 주주총회·이사회·대주주·소액주주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대주주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소액주주로서 가진 최소한의 권한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총 소집 통지가 와도, 우리는 대부분 읽어보지 않고 넘깁니다. 전자투표로 몇 번의 클릭만 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음에도, 실제 참여율은 여전히 낮은 편입니다. “어차피 내 한 표로 바뀌는 건 없으니까”라는 생각이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 침묵의 반복이 바로 “소액주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장”이라는 신호로 해석되고, 이는 대주주·경영진이 소액주주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강화합니다. 지배구조 리스크는 그렇게 고착됩니다.

해외에서는 소액주주 행동주의 펀드, 주주연대 플랫폼, 집단소송을 통해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만, 아직은 “특이한 사례”에 가까운 편입니다. 다수의 개인투자자가 여전히 “주가만 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는 한, 지배구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방향이 아니라, 유지·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쉽습니다.

3) “우리는 어차피 호구”라는 냉소가 만드는 셀프 디스카운트
투자 커뮤니티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미는 항상 당한다”, “한국장은 원래 답 없다”, “결국 외국인·기관만 먹고 빠진다” 같은 표현들입니다. 이런 냉소는 한편으로는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 방어 기제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스스로 강화하는 ‘셀프 디스카운트’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내가 투자하고 있는 시장을 스스로 “희망 없는 곳”으로 규정해 버리면, 그 시장에서 장기적인 공부·기업 분석·지배구조 이해·배당·IR 체크 같은 노력을 들이기가 싫어집니다. “어차피 다 작전이고, 다 짜고 치는 판”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는, 가장 합리적인 전략이 차트·재료·소문 위주의 단타가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수록, 시장은 점점 더 단기화되고 투기성이 강해지며, 장기 자본은 더 멀어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심해지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결국 “우리는 항상 당한다”는 말은, 실제로 당하는 경험을 설명하는 동시에, 앞으로도 계속 그런 경험을 낳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주문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투자문화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미치는, 잘 보이지 않는 심리적 메커니즘입니다.

4)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결국 개인이 뭘 한다고 바뀌냐”는 반론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개인투자자 몇 명이 태도를 바꾼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바로 사라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방향이 바뀌면, 속도는 시간이 해결해 줍니다.

개인투자자가 당장 할 수 있는 행동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종목을 볼 때, 단순한 모멘텀이 아니라 배당·자사주·지배구조·IR 태도를 체크리스트에 포함시키기
- 연금저축·IRP 같은 장기 계좌에서는 레버리지·테마 대신 지수·가치·배당·밸류업 ETF 위주로 가져가기
- 전자투표·주총 안내를 받으면 최소한 의안과 안건을 읽어 보고, 찬성/반대 표시 한 번이라도 해보기
- 지배구조·주주환원에서 좋은 행동을 하는 기업을 찾아 커뮤니티에서 공유하고, 그 기업에 자본을 보내기

이런 행동들이 모이면, 기업과 시장은 신호를 받습니다. “이제는 단기 테마주만 좋아하는 시장이 아니다. 배당을 올리고, 자사주를 소각하고, IR을 성실히 하는 기업에 자본이 모이기 시작했다”라는 신호 말입니다. 그러면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행동을 하면 주가가 더 잘 반응한다”는 학습이 생기고, 지배구조·주주환원 개선이 단발 이벤트가 아니라 문화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는 힘은 그런 작은 선택에서 시작됩니다.

결론: 우리는 구조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구조를 조금씩 움직이는 주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할 때, 개인투자자의 위치는 참 애매합니다. 분명 우리는 불리한 구조의 피해자입니다. 소액주주에게 불리한 합병,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규제, 반복되는 오너 리스크, 정책의 급선회 등을 겪으면서, “이 시장은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쌓아 왔습니다. 그 감정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우리는 그 구조 안에서 계속해서 선택을 하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단기 매매에 올인할지, 장기 자본으로 남을지, 의결권을 포기할지, 한 번이라도 행사해 볼지, 지배구조·배당·IR을 기준에 넣을지 말지. 이 선택들의 집합이 결국 “한국 투자문화”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반영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구조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그 구조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참여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 위해 정부·기업·연금이 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지만, 개인투자자에게도 나름의 몫이 있다. 나는 한국 시장을 단지 욕하는 소비자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이 시장을 함께 만드는 공동 생산자로서 바라보겠다.”

이 태도를 가지면, 몇 가지 변화가 따라옵니다. 단기 테마에 휘둘리는 대신, 지배구조·배당·IR을 기준으로 종목을 고르게 되고, 연금저축·IRP에는 한국 시장의 디스카운트를 활용하는 장기 ETF를 담게 되며, 주총 안내 메일을 그냥 지우는 대신 “내가 동의할 수 있는 의사결정인지” 한 번쯤 읽어 보게 됩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여전히 완고하겠지만, 그 기울기가 아주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투자자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 예를 들어 “오늘부터는 종목을 고를 때 배당·지배구조·IR 체크리스트를 같이 보겠다”라든가, “다음 주총 시즌에는 내 계좌 속 기업 중 하나만이라도 의결권을 행사해 보겠다” 같은 작은 약속 말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큰 구조도, 결국 이런 작은 행동들의 합이 조금씩 방향을 바꿀 때 비로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남겨보고 싶습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남이 만들어 준 운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조금씩 바꿔 나가야 할 환경이다. 그리고 그 환경을 바꾸는 첫 걸음은, 시장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태도와, 소액주주로서의 작은 행동들에서 시작된다.” 이 문장을 마음 어딘가에 두고, 내일의 매매 버튼을 조금 다르게 눌러 보는 것. 어쩌면 그게, 긴 시간 끝에 우리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작은 출발일지도 모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