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가치를 숫자로 옮기는 일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그럴듯한 범위를 좁히기’입니다. 이 글은 초보자도 실전에서 바로 돌릴 수 있도록 DCF(현금흐름할인법)·상대가치(멀티플)·EV/EBITDA의 세 가지 축을 하나의 루틴으로 묶었습니다.
먼저 현금이익(FCF)을 중심으로 사업의 엔진을 파악하고, 다음으로 자본비용(WACC)과 성장률을 보수적으로 세팅해 DCF의 범위를 계산합니다.
이어서 같은 업종의 멀티플(특히 EV/EBITDA)을 교차검증에 쓰되, 회계·리스·CAPEX 강도 차이로 생기는 착시를 덜기 위한 체크리스트도 제공합니다. 흔한 함정—적자 기업에 PER을 억지로 적용, 고CAPEX 업종에 PSR만 보고 판단, 터미널 밸류가 과도하게 비중을 차지—을 피해 가도록 ‘5분 계산 템플릿’과 시나리오 표까지 붙였습니다.
읽고 나면 “싸다/비싸다”가 아니라 “이 FCF와 ROIC, 자본비용에서 합리적 범위는 X~Y”라는 문장으로 바뀔 것입니다.

서론: 밸류에이션은 ‘이야기→숫자’의 번역—가격이 아니라 가정의 일관성이 승부다
주가가 먼저 있고 이유가 따라붙는 날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밸류에이션을 추격의 도구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올바른 순서는 반대입니다. ‘이 기업은 어떻게 돈을 벌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자본이 묶이며, 그 자본의 대가(자본비용)는 얼마인가’를 먼저 적습니다. DCF는 이 이야기를 숫자로 번역하는 도구입니다.
영업이익을 세후로 바꾼 NOPAT, 운전자본의 증감, 유지/성장 CAPEX를 더하고 빼면 FCFF(기업자유현금흐름)가 나옵니다.
여기서 WACC로 할인해 오늘의 가치로 환산한 뒤, 마지막 해에는 터미널 가치(영구성장 g 가정의 고든식 또는 EV/EBITDA Exit Multiple)로 꼬리를 묶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니라 ‘일관된 가정’입니다. 예컨대 고성장 가정을 넣었다면, 그에 맞는 재투자율과 운전자본 증가, CAPEX의 증가도 함께 따라와야 합니다.
반대로 비용을 줄여 마진을 빠르게 올린다면, 경쟁강도가 낮거나 가격결정력이 있다는 서술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상대가치(멀티플)는 이 스토리를 시장의 언어로 빠르게 번역합니다. EV/EBITDA는 회계정책과 감가의 차이를 다소 중화해 업종 내 비교에 유용하지만, CAPEX가 큰 산업에서는 ‘EBITDA는 현금 같지 않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PER은 이익이 안정적일 때 단순하고, PSR은 적자 초기 성장주를 빠르게 필터링할 때 유용하지만, 둘 다 ‘마진 사다리’ 검증이 없으면 숫자 놀음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결국 밸류에이션은 ‘그럴듯한 이야기’와 ‘보수적 숫자’의 합의입니다. 우리는 그 합의를 흔들리지 않는 절차로 만들 것입니다:
(1) 사업의 엔진 파악 → (2) FCF 근사 → (3) WACC·g 설정 → (4) DCF 범위 산출 → (5) 멀티플로 역번역 → (6) 시나리오 표로
요약. 이렇게 하면 뉴스의 소음 속에서도 판단의 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본론: DCF·EV/EBITDA·상대가치를 한 루틴으로—공식·함정·체크리스트·5분 계산
1) EV와 FCFF의 뼈대—EV(기업가치)=시가총액+순차입금(총차입–현금)±기타조정(리스·소수주주지분 등). FCFF=EBIT×(1–t)+감가·상각–Δ운전자본–CAPEX. 핵심은 ‘현금이익’으로 보정하는 겁니다. SBC(주식보상)는 비현금이지만 희석을 통해 궁극의 현금유출이므로, 멀티플 크로스체크 때는 가벼이 보지 않습니다.
2) WACC·터미널 밸류—WACC는 자기자본비용(Re)과 부채비용(Rd)을 가중평균한 할인율. Re는 대개 무위험수익률+β×시장위험프리미엄으로 근사합니다. 터미널 밸류는 고든식 TV=FCFn+1/(WACC–g) 또는 EV/EBITDA Exit Multiple로 계산. 주의: g는 명목 GDP 성장률 이하의 보수적 수치로, TV 비중이 전체 DCF의 50~70%를 넘어가면 가정이 과감할 수 있습니다.
3) EV/EBITDA와 비교 대상—EBITDA는 감가상각 전 영업현금흐름의 ‘근사치’지만, CAPEX가 큰 업종(통신·유틸·조선·화학)에서는 착시가 큽니다. IFRS 16 이후 리스가 EBITDA를 밀어 올릴 수 있으므로, ‘리스 전/후’ 비교의 일관성이 필요합니다. Peer는 동일 사업모델·CAPEX 강도·레버리지 수준이 유사해야 합니다.
4) 5분 계산 루틴(예시)—매출 1조, 영업이익률 10%, 세율 25% → NOPAT 750억. 감가·상각 400억, ΔNWC 100억 증가, CAPEX 500억 → FCFF≈750+400–100–500=550억. 순차입금 2,000억, 주식수 1억주. (a) WACC 8%, g 2% 가정 시 DCF 5년+TV로 EV 대략 범위 산출. (b) 업종평균 EV/EBITDA 8~10배, EBITDA(=영업이익+감가상각)=1,400억 → EV 1.12~1.40조. (c) EV–순차입금=주식가치 → 9,200억~1.2조 → 주당 92~120. (d) DCF 결과와 멀티플 범위가 겹치는 구간이 ‘합리 범위’.
5) 함정과 레드플래그—①터미널이 전부: TV 비중 70%↑면 가정 재점검. ②적자/저마진에 PER 적용: 무의미하거나 왜곡. ③EV/EBITDA 과신: 리스·CAPEX·규제산업은 조정 필요. ④PSR 고배수: 마진 사다리(매출→영업→FCF)의 현실성 확인. ⑤FCF/순이익 괴리: 운전자본·SBC·이연수익·환효과 점검.
6) 체크리스트—A) 사업 엔진: 가격결정력·비용구조·운전자본·CAPEX 강도. B) ROIC–WACC: (+)인가? 스프레드가 커질 여지는? C) FCF의 질: 반복성·현금전환율. D) Peer 멀티플: 정의·기준의 일관성(리스/비핵심자산/조정항목). E) 시나리오: 베이스/낙관/보수 3×3 표(마진×성장×WACC). F) 결론 문장: “EV는 X~Y, 주당 가치는 A~B, 마진 1%p·WACC 0.5%p 변화 민감도는 C/D.” 이 여섯 줄이면 의사결정이 단단해집니다.
결론: 숫자는 매일 바뀌지만, 절차는 바뀌지 않는다—범위·민감도·여유자본으로 안전마진을 확보하라
밸류에이션으로 큰돈을 벌려 하기보다, 큰 실수를 피하려는 마음가짐이 오래 갑니다.
오늘의 메시지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범위—한 점이 아니라 구간으로 생각하라. DCF와 EV/EBITDA가 겹치는 구간을 기본값으로 삼고, 그 밖의 영역은 ‘증거 필요’로 분류합니다.
둘째, 민감도—마진·성장·WACC 1칸씩만 조정해 주당 가치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표로 보세요. 민감도가 큰 기업은 포지션을 작게 잡고, 체크포인트(신제품, 증설, 규제)를 캘린더에 박습니다.
셋째, 여유자본—아무리 싸 보여도 현금비중 가드레일(예: 최소 30%)을 지켜 다음 기회에 대응합니다.
마지막으로 루틴을 선언합니다. “①FCFF 근사, ②WACC·g 보수 세팅, ③DCF 범위 도출, ④EV/EBITDA로 역검증, ⑤3×3 시나리오 표 작성, ⑥한 문장 결론과 트리거 기록.” 이 절차는 뉴스와 주가의 소음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합니다. 싸다고 덥석, 비싸다고 무조건 회피가 아니라, ‘왜’와 ‘얼마나’의 언어로 자신을 설득하며 한 걸음씩 가는 것—그 꾸준함이 결국 복리의 친구가 됩니다.
오늘 공시를 하나 골라 5분 루틴을 돌려보세요. 숫자가 갑자기 친근해질 겁니다. 그리고 그 친근함이, 내일 더 침착한 결정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