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식시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번 장은 싸다”, “지금은 비싼 구간이다”라는 표현이 정말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막상 근거를 물어보면, 코스피 지수 숫자나 체감 가격, 혹은 뉴스 헤드라인 정도에 기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은 그런 막연한 느낌 대신, 코스피의 **ROE(자기자본이익률)**와 PBR(주가순자산비율) 두 개의 축을 그래프 위에 올려놓고 “어느 시대가 진짜 싸고 비싼 장이었는지”를 연도별로 비교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코스피 지수만 보면 단순히 “2000포인트·3000포인트”로만 보이지만, 같은 2000포인트라도 그 시기의 ROE가 5%였는지 15%였는지, PBR이 0.8배였는지 2배였는지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글에서는 연도별 코스피 ROE·PBR·지수를 하나의 인포그래픽으로 엮어, “ROE는 높은데 PBR은 눌려 있던 저평가 구간”, “ROE가 떨어지는데도 PBR이 높게 유지되던 위험한 고평가 구간”을 사례별로 짚어봅니다. 궁극적으로는 독자가 앞으로 시장을 볼 때 “지수 레벨”이 아니라 “수익성과 자산가치의 조합”으로 시장 체温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서론: 숫자 두 개만 알면 보이는 시장의 얼굴, ROE와 PBR
주식을 처음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개념 중 하나가 PER입니다. 주가수익비율, 즉 “이 회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몇 배 가격을 시장이 쳐주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죠. PER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장 전체의 장기 체질을 보려면 ROE와 PBR라는 두 개의 축을 함께 보는 편이 훨씬 유용합니다. ROE는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굴려 이익으로 만들어내는가”를 나타내고, PBR은 “그 자산가치(자기자본)에 시장이 몇 배의 가격을 부여하는가”를 의미합니다. 즉, ROE는 기업·시장 자체의 ‘체력’, PBR은 그 체력에 대한 ‘평가와 기대’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코스피 장기 그래프를 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차트 위에 선명히 찍혀 있습니다. IMF 이후 회복, 닷컴 버블,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중국 둔화, 코로나, 최근 긴축장까지. 그런데 이때 각각의 시점에서 코스피 **ROE가 어느 수준이었고, PBR이 몇 배였는지**를 함께 놓고 보면, ‘공포와 탐욕’의 강도와 시장 체질의 변화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 직후, 기업들의 일시적인 적자로 ROE는 크게 떨어졌지만, 동시에 시장 공포로 PBR이 1배 아래로 눌리며 “자기자본보다 싸게 거래되던 구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수익성은 이미 피크아웃하는데도, 유동성과 낙관론에 힘입어 PBR이 1.5~2배 이상까지 치솟은 구간도 있습니다.
그래프를 하나 상상해 봅시다. x축에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의 연도, 왼쪽 y축에는 코스피 ROE(%)와 코스피 지수(지수화된 값), 오른쪽 y축에는 PBR 배수를 올려봅니다. 파란 선은 ROE(수익성의 굴곡), 초록 선은 코스피 지수(가격), 주황 선은 PBR(시장평가의 온도)를 나타냅니다. 이 세 줄을 한 번에 보면, 우리가 흔히 “박스피”, “유동성 장세”, “실적 장세”라고 불렀던 시기가 실제로는 어떤 조합이었는지 또렷해집니다. ROE는 올라가는데 PBR은 따라 올라오지 못했던, 그래서 장기 투자자에게는 기회였던 구간이 있었고, 반대로 ROE가 꺾이는데도 PBR이 한동안 버티다가 나중에 크게 무너졌던, 위험한 구간도 존재합니다.
서론에서 먼저 짚고 싶은 포인트는 이겁니다. “싸다/비싸다”는 말은 결국 ‘수익성 대비 자산가치’와 ‘그 위에 덧씌워진 기대의 두께’를 함께 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는 것. ROE와 PBR은 그 두 가지를 딱 두 숫자로 압축해 보여줍니다. 이제 본론에서는 ROE·PBR·코스피 세 줄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패턴을 몇 가지로 나눠, 실제로 어떤 장면에서 큰 수익과 큰 손실이 생겼는지를 돌아보겠습니다.
본론: ROE·PBR·코스피 세 줄이 보여주는 싸고 비싼 장의 패턴
1. ROE 회복 + PBR 저평가: 체력이 회복되는데 시장은 아직 믿지 않는 구간
첫 번째 패턴은 위기 직후, 혹은 깊은 조정 이후에 자주 등장합니다. 금융위기나 코로나 쇼크처럼 큰 충격을 겪은 뒤, 기업들은 구조조정·비용 절감·사업 재편을 통해 수익성을 다시 끌어올리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ROE는 바닥을 찍고 조금씩 올라갑니다. 그래프에서 파란 ROE 선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완만한 U자형을 그리며 위를 향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시장 심리는 아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또 무슨 일이 터지는 거 아니야?”, “이번 회복은 오래 못 갈 거야” 같은 의심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주가가 조금만 오르면 매도 물량이 쏟아지고, PBR은 1배 안팎, 때로는 1배 아래에서 눌려 있기도 합니다.
이 구간을 “ROE 회복 + PBR 저평가”의 조합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기업이 실제로 버는 힘은 돌아오는데, 시장은 아직 그것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상태죠. 장기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때가 가장 탐나는 시기 중 하나입니다. 자산가치(자기자본) 대비 싸게 거래되면서, 수익성 개선까지 겹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데이터로 돌아보면, 이런 조합이 나타난 직후 3~5년 동안 코스피, 특히 ROE 개선이 뚜렷한 업종과 스타일(질 좋은 가치주·퀄리티주)이 시장 대비 초과 수익을 거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2. ROE 상승 + PBR 재평가: ‘실적 장세’와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이 동시에 오는 구간
ROE 회복 구간이 어느 정도 이어지고, 실적 개선이 반복되면, 시장도 서서히 마음을 풀기 시작합니다. 애널리스트들이 이익 전망을 상향하고, 리포트 헤드라인에 “실적 서프라이즈”, “마진 개선 지속” 같은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때부터는 PBR도 1배에서 1.2배, 1.3배… 이런 식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그래프에서는 파란 ROE 선과 주황 PBR 선이 함께 우상향하며, 초록 코스피 지수 선도 그 중간쯤에서 더 가파른 경사를 타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구간은 흔히 말하는 “실적 장세”이면서 동시에 “밸류에이션 리레이팅” 구간입니다. 기업이 실제로 더 많이 벌고 있기 때문에, 시장이 그 기업에 더 높은 PBR을 부여하는 것이 어느 정도 정당화됩니다. 특히 과거에 장기간 디스카운트를 받았던 업종(예: 구조조정이 끝난 금융, 체질 개선에 성공한 전통 제조, 지배구조 개선이 진행된 지주사 등)이 이 단계에서 강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ROE가 과거 평균을 넘어가는 순간, PBR이 “이제는 예전처럼 싸게 볼 수 없다”고 말해 주는 셈입니다.
3. ROE 피크 + PBR 고평가: 모두가 좋다고 말할 때 조심해야 하는 조합
가장 위험한 시점은, ROE가 이미 고점에 와 있거나 상승세가 둔화되기 시작했는데, PBR은 여전히 높거나 더 높아지고 있는 구간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면, 파란 ROE 선은 위쪽에서 평평해지거나 살짝 꺾이는 반면, 주황 PBR 선은 1.5배, 2배 가까이까지 치솟습니다. 코스피 지수 역시 사상 최고치, 혹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레벨을 기록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론과 시장에서는 “한국 기업의 체질이 달라졌다”, “이제 과거와 다른 시대”라는 말이 나오기 쉽습니다.
이때의 문제는, 이미 좋은 뉴스가 대부분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ROE가 더 올라갈 여지는 제한적인데, PBR이 그 이상 앞서가 있다면, 앞으로는 “수익성 개선 → PBR 상향”이 아니라 “수익성 둔화 또는 유지 → PBR 조정”의 조합이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즉, 이익은 그대로인데 시장 평가만 낮아지는, 밸류에이션 조정 장세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이런 시기 이후에는 몇 년에 걸친 박스권, 혹은 큰 폭의 조정이 뒤따른 경우가 많았습니다. “ROE 피크 + PBR 고평가” 구간에서 공격적인 레버리지와 추격 매수는 특히 조심해야 할 전략입니다.
4. ROE 하락 + PBR 디스카운트: 함정인가, 기회인가?
반대로, ROE가 구조적으로 떨어지는 업종이나 시장에서는 PBR이 계속 낮은 수준에 머무르거나, 1배 아래에서 장기간 거래되기도 합니다. 이때는 “ROE 하락 + PBR 디스카운트” 조합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PBR 0.5배, 0.6배니까 싸 보인다”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자산의 수익성이 계속 나빠지고 있어 가치가 잠식되는 중일 수 있습니다. 이른바 ‘가치 함정(value trap)’입니다.
코스피 전체 차원에서 ROE가 구조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서는, 단순히 “코스피 PBR이 역사적 저점이니 무조건 싼 시장”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때는 ROE 하락이 일시적인 경기 요인인지, 아니면 산업 구조 변화·경쟁 심화·규제 강화 같은 구조적 요인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만약 구조적 하락이라면, 낮은 PBR은 시장이 말해주는 “이 비즈니스 모델의 기대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는 경고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기사이클·원가 사이클 요인으로 ROE가 일시적으로 눌려 있는 것이라면, PBR 디스카운트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판단의 기준은 결국 “향후 ROE가 다시 과거 평균 수준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입니다.
5. 엑셀로 직접 만들어 보는 ‘ROE·PBR·코스피 인포그래프’
실제로 이 모든 조합을 손으로 확인해 보고 싶다면, 엑셀이나 구글 시트로 연도별 코스피 ROE·PBR·지수를 정리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① 연도별 코스피 ROE(시장 전체), ② 코스피 PBR(배수), ③ 코스피 연말 지수 또는 2000년=100 기준 지수화 값을 한 시트에 넣습니다. 그다음, ROE와 지수는 왼쪽 축, PBR은 오른쪽 축에 두고 세 줄짜리 선 그래프를 그립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 코로나, 최근 금리 급등기 같은 주요 이벤트에는 세로선과 간단한 라벨을 붙여두면, “그때 ROE·PBR 조합이 어땠는지” 한 번에 보입니다.
이 인포그래프를 블로그에 올릴 때는, ROE·PBR·지수 각각의 평균선(예: ROE 10%, PBR 1배)을 점선으로 그어두고, 고평가·저평가 구간을 색깔이나 음영으로 표시하면 독자들이 패턴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ROE는 평균 이상인데 PBR은 1배 이하인 구간에는 ‘저평가 기대 구간’ 같은 주석을, ROE가 평균 이하인데 PBR은 1.3배 이상인 구간에는 ‘밸류에이션 과열 주의’ 같은 라벨을 붙이는 식입니다. 이런 시각화 작업은, 숫자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던 시장의 변화 양상을 “오감으로 느끼는 공부”로 바꿔줍니다.
결론: 지수 레벨보다 중요한 것, ROE와 PBR의 조합
ROE·PBR·코스피 세 줄을 함께 놓고 보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지수 숫자”에만 매달려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2000, 2500, 3000 같은 숫자는 머릿속에 강하게 남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졌던 시기의 ROE와 PBR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투자 성과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기업이 자기자본을 얼마나 잘 굴려 지속적으로 ROE를 내느냐, 그리고 시장이 그 ROE에 대해 몇 배의 PBR을 허용하느냐”입니다. 코스피가 같은 2500이라도, ROE 5%·PBR 1.5배일 때와 ROE 12%·PBR 0.9배일 때의 매력도는 전혀 다릅니다.
실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첫째, 시장이 빠졌을 때 단순히 “얼마나 떨어졌나”만 보지 말고, “ROE는 어느 수준인지, PBR은 몇 배까지 내려왔는지”를 함께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입니다. ROE가 회복되기 시작했고, PBR이 1배 이하 또는 역사적 평균보다 명백히 낮은 구간에 와 있다면, 공포 속에서도 장기 투자 관점에서 기회를 고민해 볼 시점일 수 있습니다. 둘째, 시장이 뜨거울 때는 “지수가 신고가인가”보다 “ROE가 정점을 지나고 있지는 않은지, PBR이 과거 어느 때보다 비싼 구간에 올라와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 조합이 겹친다면, 포지션의 공격성을 줄이고 레버리지를 낮추는 것이 계좌를 지키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개별 종목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PER만 보고 싸다·비싸다를 판단하기보다, 그 기업의 ROE 추세와 PBR 레벨을 함께 보면서 “수익성·자산가치·시장 기대” 세 가지를 동시에 체크해야 합니다. ROE가 꾸준히 10~15% 이상 유지되는데도 PBR이 1배 근처에 머무르는 기업은, 장기 투자자에게 매우 흥미로운 후보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ROE 변동성이 크고 하락 추세인 기업이 높은 PBR을 받고 있다면, 단기 모멘텀을 노리는 트레이딩이 아니라면 한발 물러서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전하고 싶은 핵심은 “복잡한 모델을 만들자”가 아니라, “코스피를 볼 때 ROE와 PBR이라는 두 개의 느리지만 중요한 축을 함께 떠올리자”는 제안입니다. 한 번쯤 연도별 ROE·PBR·지수를 엑셀로 그려본 뒤, 과거 정말 싸고 비쌌던 구간이 언제였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세요. 그러면 다음 번 사이클에서 비슷한 조합이 나타났을 때, 단순한 공포와 탐욕 대신, 조금 더 차분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수 숫자에만 흔들리던 투자에서, 시장의 체질과 평가를 함께 읽어내는 투자로 한 단계 올라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