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장사들은 “현금은 회사 안에 쌓아두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을 오래 지나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배당보다 ‘안정성’과 ‘투자 여력’을 더 높게 쳐주던 문화가 있었고, 경영진 역시 “돈을 많이 벌어서 회사 덩치를 키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문제는 자본시장의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이제 글로벌 투자자들은 “얼마나 벌었냐”만 보지 않고, “그 이익을 주주와 얼마나 나누는지”, “현금을 어떻게 쓰는지”를 함께 봅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전통적으로 낮은 배당성향을 유지해 온 한국 기업 문화는 자연스럽게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구조적 저평가의 빌미가 됩니다. 같은 이익을 내더라도, 배당과 자사주 소각을 통해 꾸준히 주주에게 돌려주는 기업에는 높은 PER·PBR을 주고, 이익을 내부에만 쌓아두는 기업에는 낮은 배수를 부여하는 것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상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한국의 낮은 배당성향 문화가 어떻게 주주가치 저평가와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지는지, 역사적 배경과 구조, 그리고 앞으로 바꿔야 할 지점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단순히 “배당 좀 더 줘라” 수준을 넘어, 배당정책이 기업가치·국가 밸류에이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구조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서론: 왜 한국 주식은 ‘배당도 적고, 평가도 낮을까’
한국 주식시장에 오래 머무른 투자자라면 이런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입니다. “배당 좀 올리면 좋겠는데….” 실적 발표 시즌마다 영업이익은 사상 최대, 매출은 최고치라고 자랑하지만, 막상 배당 공시를 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숫자가 찍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금성 자산은 산처럼 쌓여 있는데, 주주에게 돌아오는 몫은 조금만 떼어 주고 나머지는 전부 유보금이나 모호한 ‘향후 투자 재원’으로 남겨두는 식이죠. 주주 입장에서는 “이 회사는 나를 동업자로 보는가, 아니면 자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은행 정도로 보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 기업들은 낮은 배당성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성장 단계라서 내부 유보와 투자 여력이 중요하다”, “경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비상금을 많이 쌓아둬야 한다”, “배당을 높이면 재투자 여력이 줄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식의 이유입니다. 고도성장기에는 이런 설명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졌습니다. 실제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신사업 진출이 성장의 핵심이었고, 당시 은행 시스템과 자본시장도 지금만큼 발달해 있지 않아 내부유보가 곧 투자 재원의 핵심이었습니다. 따라서 “배당보다 투자”를 우선하는 문화는 나름의 시대적 합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기업 환경이 달라졌습니다.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며, 모든 기업이 과거처럼 두 자릿수 성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성숙산업에서는 성장률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주주환원이 더 중요한 투자 포인트가 되었고, 글로벌 투자자들은 “이익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는가”를 기업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시장에서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일상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낮은 배당성향을 유지하는 기업은 점점 “주주가치에 둔감한 기업”으로 분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상장사의 낮은 배당성향은 곧 “글로벌 기준에서 뒤처진 주주환원 문화”로 읽히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투자자는 단일 기업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시장 전체를 패키지로 바라봅니다. “한국 기업들은 전반적으로 배당을 적게 주는 편이다”, “현금을 많이 쌓아두고도 주주에게 잘 돌려주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면, 자연스럽게 한국 시장 전체에 디스카운트가 적용됩니다. 같은 PER·PBR이라도, “이익을 주주에게 잘 돌려주는 문화”가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가 있다면 어떤 쪽에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줄까요? 답은 뻔합니다. 낮은 배당성향은 단지 배당금 몇 백 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자본시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와 선호도, 즉 국가 프리미엄·디스카운트에 직결됩니다.
서론에서 우리가 확인하고 싶은 핵심은 이것입니다. 낮은 배당성향은 “아까운 돈 아끼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의 머릿속에서 “한국 주식 = 주주와 이익을 잘 나누지 않는 시장”이라는 라벨을 강화시키는 요인이라는 점입니다. 이 라벨이 강해질수록, 한국 시장은 해외 자본과 장기 자금을 끌어오기 어려워집니다. 그 결과가 곧 코리아 디스카운트입니다. “한국은 성장도 있고 실적도 좋은데, 왜 늘 싸게 거래될까?”라는 질문의 뒤에는, 늘 “주주환원 문화의 부족”이 그림자처럼 붙어 있습니다.
이제 본론에서는 한국 기업의 낮은 배당성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번역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왜 기업·정부·투자자 모두에게 배당정책의 전환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는지, 단순히 “더 주자”를 넘어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배당과 자사주 정책을 설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론: 낮은 배당성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만드는 다섯 가지 구조
첫째, “이익은 나는데 내 통장에는 안 들어온다”는 경험이 신뢰를 갉아먹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배당은 가장 직관적인 수익입니다. 주가가 당장 오르지 않아도, 매년 꾸준히 들어오는 배당금은 “이 회사 이익의 일부는 확실히 내 몫으로 돌아온다”는 확신을 줍니다. 반대로 이익은 잘 내는데 배당이 지나치게 적거나, 들쑥날쑥하다면, 주주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회사가 벌어들인 이익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낮은 배당성향은 단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주주에게 돌아오는 ‘가시적인 보상’이 부족하다는 신호입니다. 이 경험이 쌓일수록 투자자는 한국 상장사 전반에 대해 “이익이 나도 결국 내 몫이 되지 않는다”는 냉소를 갖게 되고, 이 냉소는 자연스럽게 낮은 PER·PBR로 반영됩니다.
둘째, 과도한 유보금과 낮은 자본효율성이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킵니다. 배당을 적게 주는 기업들은 대체로 현금과 이익잉여금이 두텁게 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돈이 반드시 고수익 투자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성장성이 높고, 투자 프로젝트의 기대 수익률이 자본비용을 충분히 상회한다면 내부 유보는 좋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성숙 단계에 접어든 사업에서, 뚜렷한 투자 계획 없이 현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자본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입니다. 시장은 “이 회사는 현금을 쌓아두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그만큼 낮은 ROE(자기자본이익률)를 반영해 밸류에이션을 깎습니다. 주주에게 돌려줘서 타 기업·다른 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하는 것보다, 회사 안에 그냥 묵혀두는 선택을 하는 순간, 자본의 기회비용이 커지고, 이 비용이 곧 디스카운트로 돌아옵니다.
셋째, 글로벌 비교에서 “주주친화성”이 떨어져 자금 유입 경쟁에서 밀립니다. 세계는 자본 유치 경쟁 중입니다. 미국·유럽·일본, 심지어 일부 이머징 국가들도 연금·기관투자자·해외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적극적으로 배당·자사주 정책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기업의 낮은 배당성향은 곧 “주주친화성이 떨어지는 시장”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글로벌 투자자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비중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왜 굳이 한국이어야 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면, 자본은 자연스럽게 다른 시장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빠져나간 자금은 주가·밸류에이션·유동성 측면에서 악순환을 만듭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시장에서의 매력 경쟁에서 뒤처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넷째, 낮은 배당성향은 지배구조 리스크와 결합해 “언제든 딴 데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신호가 됩니다. 배당을 적게 주는 것 자체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불투명할 때입니다. 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에서 과도한 유보금은 종종 대주주 사익추구, 무리한 M&A, 비핵심 사업 확장, 계열사 지원 등으로 사용될 가능성을 내포합니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배당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던 돈이, 언제든지 내 동의 없이 위험한 곳에 투입될 수 있다”는 불안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낮은 배당성향이 곧 지배구조 리스크의 그림자로 해석됩니다. 시장은 “이 회사의 현금은 온전히 내 몫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더 높은 요구 수익률을 적용합니다. 그 결과 PER은 낮게, PBR은 1배를 넘기 어려운 상태가 반복됩니다.
다섯째, 투자 문화와 심리에 남긴 “한국 주식은 배당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낙인입니다. 개인투자자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주식은 오랫동안 “배당보다 시세차익에 의존해야 하는 시장”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배당투자, 배당성장주라는 개념이 천천히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투자자에게 배당은 “있으면 좋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 것”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인식은 단지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 투자 전략과 수급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배당이 약하니 자연스럽게 단기매매·테마주·레버리지 상품에 자금이 더 쏠리고, 장기·안정적인 자금은 해외시장이나 다른 자산으로 향합니다. 장기 자금이 부족한 시장은 변동성이 크고, 밸류에이션이 구조적으로 낮게 형성되기 쉽습니다. 즉, 낮은 배당성향은 투자 문화까지 왜곡시키고, 그 왜곡이 다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이 다섯 가지 구조를 종합해 보면, 낮은 배당성향은 단순히 배당금 몇 퍼센트의 문제가 아니라, “이익의 배분 구조”, “자본 효율성”, “지배구조 리스크”, “글로벌 자금 유입 경쟁력”, “투자 문화”까지 이어지는 장기적 구조의 문제입니다. 한국 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적 개선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익을 어떻게 나누고, 현금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결론: 배당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와 리레이팅을 사는 투자’다
이제 질문을 이렇게 바꿔볼 수 있습니다. “배당을 늘리면 정말 기업가치는 떨어질까?”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배당을 많이 줄수록 회사에 남는 현금이 줄어들고, 그만큼 성장 투자 여력이 줄어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자본시장이 성숙해진 지금, 배당은 단순히 돈이 빠져나가는 비용이 아니라, “신뢰와 프리미엄을 사는 투자”라는 인식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배당정책, 필요할 때는 과감한 자사주 매입·소각을 병행하는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이익을 주주와 정직하게 나누는 회사”라는 신뢰를 얻습니다. 이 신뢰는 곧 더 낮은 요구 수익률, 더 높은 PER·PBR로 돌아옵니다. 즉, 현금이 조금 나가는 대신, 기업가치 전체가 리레이팅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관점에서도 배당정책은 핵심 변수입니다. 한국 상장사 전반이 배당성향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자사주 소각을 포함한 주주환원 정책을 장기적 로드맵으로 제시한다면, 한국 시장 전체에 붙어 있던 “주주와 이익을 잘 나누지 않는 나라”라는 라벨을 서서히 떼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배당성향 상향, 분기·반기 배당 도입,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을 끌어냈고, 같은 업종·비슷한 실적에도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쌓이면, “한국도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세계 자본시장에 전달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강도는 점차 약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일률적으로 배당을 올려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아직 성장 여력이 크고, 투자 프로젝트의 기대 수익률이 충분히 높다면, 내부 유보와 투자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타당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논리’와 ‘일관성’입니다. 왜 지금은 배당을 적게 주고 투자를 늘리는지, 언제부터 배당성향을 올릴 계획인지, 투자 실패 시에는 어떤 방식으로 주주와 리스크를 나눌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솔직하게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 회사는 성장기니까 배당은 나중에 생각하겠다”는 식의 막연한 설명으로는 더 이상 시장을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성장과 배당을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업 생애주기와 투자기회에 따라 균형 있게 설계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제도 측면에서도 배당 문화 전환을 뒷받침할 장치들이 중요합니다. 배당소득세·이중과세 구조 개선, 장기보유 주주에 대한 세제 혜택, 연금·기관투자자의 배당성향 반영 투자 기준 등은 기업이 주주환원을 늘리는 데 부담을 덜어 줄 수 있습니다. 동시에 배당·자사주 정책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고,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배당정책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투자하면, 성장뿐 아니라 안정적인 현금흐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해외·국내 장기 자금이 한국 시장에 더 많이, 더 오래 머물 수 있습니다.
개인투자자에게는 한 가지 현실적인 체크포인트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종목을 고를 때, PER·PBR·성장성만 보지 말고, “이 회사는 과거 5~10년 동안 이익을 어떻게 썼는가?”를 함께 보자는 것입니다. 영업이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과 자사주 매입도 늘어났는지, 현금성 자산과 이익잉여금만 비대해지고 있지는 않은지, 배당정책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같은 실적이라도, “이익을 주주와 꾸준히 나눠 온 기업”과 “유보만 늘리고 주주와의 소통이 부족한 기업”의 장기 수익률은 전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큽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환경에서도, 이런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덜 할인받거나, 오히려 프리미엄을 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결국 낮은 배당성향을 바꾸는 일은 단순히 “조금 더 나눠주는”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국 자본시장이 스스로에게 붙인 “주주가치 후순위”라는 라벨을 떼어내는 과정이자,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줄이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지렛대 중 하나입니다. 이 글이 배당을 “그냥 덤으로 받는 용돈”이 아니라, “신뢰와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리는 핵심 도구”로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낮은 배당성향과 연결된 주주환원 정책 전반 – 자사주 매입·소각, 특별배당, 배당 성장 정책 –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고리를 끊어갈 수 있을지 좀 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