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차트만 보면 시장이 비싸 보이기도 하고, 싸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지수 수준이라도 기업들의 이익(EPS)이 얼마나 늘었는지, 투자자들이 얼마나 높은 밸류에이션(PER)을 쳐주고 있는지에 따라 “실제 체감 가격대”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글은 코스피 지수, 코스피 전체 EPS(주당순이익), 그리고 PER(주가수익비율) 세 가지를 한 그래프에 얹어 놓고, 어느 시기에는 이익이 먼저 오르고, 어느 시기에는 PER이 먼저 확장되고, 또 어느 시기에는 둘 다 꺾이면서 경기침체 신호를 보냈는지 연도별 흐름으로 정리해보려는 시도입니다. 단순히 “PER 10배면 싸다”, “PER 20배면 비싸다”는 숫자 기준만으로 시장을 재단하는 대신, EPS와 PER가 경기 사이클을 따라 어떻게 움직여 왔는지를 구간별로 복기해 봅니다. 특히 “코스피는 횡보인데 EPS는 꾸준히 상승한 구간”, “EPS는 꺾이는데 PER이 아직 높게 버티는 구간”처럼 가격과 이익이 엇갈리는 장면에 집중해, 투자자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쉬웠고, 실제로 그 이후 몇 년간 시장이 어떤 결과를 보여줬는지 이야기처럼 풀어보겠습니다. 이 글의 목표는, 독자가 코스피 지수를 볼 때 자연스럽게 “지금은 이익이 이만큼, PER이 이 정도인 구간이구나”를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서론: 코스피 지수만 보면 놓치는 것들 — 이익과 밸류에이션이라는 두 개의 축
주식시장에 막 입문하면 가장 먼저 보는 숫자는 코스피 지수입니다. 2000포인트, 2500포인트, 3000포인트 같은 ‘레벨’이 심리적으로 강하게 남죠. 언론도 “코스피 3000 붕괴”, “코스피 2500 회복”처럼 지수 숫자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공부를 해 보면 금방 깨닫게 됩니다. 같은 2500포인트라도, 어떤 해에는 “역사적으로 꽤 비싼 구간”일 수 있고, 또 다른 해에는 “생각보다 싸진 구간”일 수 있다는 것을요.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단 하나, 분모인 ‘이익(EPS)’과 시장이 허용한 ‘PER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코스피 지수가 2500일 때, 지수에 포함된 기업들의 합산 EPS가 200이라면 PER은 12.5배입니다. 그런데 몇 년 뒤, 지수가 여전히 2500인데 EPS가 300으로 늘었다면 PER은 8.3배로 내려옵니다. 지수 숫자는 똑같은데, 실질적으로는 “이익이 50%나 늘었는데 가격은 제자리인 상태”가 된 셈입니다. 반대로 EPS가 200인데 지수가 3000이라면 PER은 15배가 되는 식으로, 같은 이익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구간이 되죠. 이렇듯 지수 레벨만 보고 시장이 비싼지 싼지를 판단하는 것은, 건물 층수만 보고 집값을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건물의 위치, 평수, 내부 구조(=이익)와 사람들이 그 건물을 얼마나 사고 싶어하는지(=PER)를 함께 봐야 제대로 된 가격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문제는, 우리는 일상적으로 PER과 EPS를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리는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기업 단위에서는 “이 종목 PER 몇 배냐”를 이야기하지만, 지수 전체에 대해서는 막연히 “요즘 시장 비싸대”, “그래도 코스피 PER은 아직 괜찮다더라” 정도의 말로만 접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이 글에서는, 코스피 지수와 함께 지수당 EPS(지수 전체 이익)와 지수 PER를 한 그래프에 얹어 보는 연습을 해보려 합니다. x축에는 연도, 왼쪽 y축에는 지수와 EPS(지수화된 값), 오른쪽 y축에는 PER를 놓고 삼중 그래프를 그려보면, “가격과 이익, 밸류에이션”이 서로 어떻게 쫓고 쫓기는지 흐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서론에서 먼저 짚고 싶은 포인트는 단순합니다. “PER이 높다/낮다”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PER가 어떤 EPS 사이클 위에서 형성된 것인지 함께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익이 막 늘어나기 시작하는 초기 국면에서 PER이 일시적으로 높게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익이 이미 피크를 찍고 꺾이기 시작했는데도 PER이 역사적 평균 이상에서 버티고 있다면, 그 구간은 향후 조정 위험을 키우는 경고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의 본론에서는 몇 개의 대표적인 조합을 통해, “코스피 지수, EPS, PER” 세 줄이 만들어낸 장면들을 하나씩 복기해 보겠습니다.
본론: 코스피 지수·EPS·PER 삼중 그래프로 읽는 사이클 패턴
1. 이익은 늘어나는데 지수는 제자리: ‘PER 디레이팅’ 구간
첫 번째로 자주 등장하는 패턴은, 코스피 지수는 박스권에서 크게 오르지 않는데, 지수 EPS는 꾸준히 상승하는 구간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면 초록색 코스피 선은 옆으로 기어가는 반면, 파란색 EPS 선은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립니다. 이때 PER(빨간 선)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패턴을 보입니다. 같은 지수 레벨에서 이익이 늘어나니, “같은 가격에 더 많은 이익”을 파는 시장이 되는 것이죠. 이를 흔히 PER 디레이팅(de-rating) 구간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 투자자가 느끼는 감정은 대개 답답함입니다. “기업 실적은 계속 좋아진다는데, 왜 지수는 안 올라?”라는 불만이 나오기 쉽습니다. 그러나 장기투자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 구간은 나쁘지 않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마치 월세가 꾸준히 올라가는데 집값은 제자리인 부동산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EPS 증가가 일시적인 특수 효과(일회성 이익, 회계 처리)보다는, 구조적인 성장과 마진 개선에서 나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프만 보고 “PER이 낮아졌다 → 싸다”로 곧장 결론내릴 게 아니라, EPS 성장의 질을 함께 점검해야 합니다.
2. 지수는 먼저 질주, EPS는 나중에 따라오는 ‘선반영 랠리’ 구간
반대로 코스피가 먼저 강하게 상승하고, EPS는 뒤늦게 따라오는 구간도 있습니다. 경기 바닥에서 회복 기대가 커지거나, 금리 인하·유동성 공급에 대한 기대가 커질 때 자주 등장하는 패턴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면, 초록색 지수 선이 먼저 가파르게 올라가고, 파란색 EPS 선은 한 박자 느리게 우상향을 시작합니다. 이때 PER는 빠르게 치솟아 ‘고평가 구간’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실제 이익이 그 기대를 따라잡으면 다시 역사적 평균 근처로 내려옵니다.
이 구간에서는 언론과 시장에서 “PER 너무 비싸다, 버블 아니냐”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 시기가 경기 회복 사이클의 초입이었던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핵심은 “PER 상승이 이익 성장으로 정당화되는지”입니다. 이후 몇 년간 EPS가 실제로 증가해 PER가 정상화된다면, 초기의 높은 PER 구간도 결과적으로는 “합리적인 선반영”이 됩니다. 반대로 EPS가 기대만큼 늘지 못한다면, 버블 구간이 되어 나중에 가격 조정으로 되돌려 받게 되겠죠.
3. EPS 피크아웃 + PER 고평가: 조정 위험이 커지는 구간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조합은, EPS가 이미 피크를 찍고 성장률이 둔화되거나 역전되기 시작하는데, PER는 여전히 평균 이상에서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구간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면, 파란색 EPS 선은 꺾이기 시작했는데, 빨간 PER 선은 아직 위쪽에서 꿈쩍하지 않습니다. 초록색 코스피 지수 선은 이 둘의 줄다리기 속에서 고점 부근에서 머뭇거리거나, 약한 조정만 받은 채 버티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 구간에서 시장은 대개 낙관과 경계 사이에서 갈팡질팡합니다. “내년 이익도 괜찮을 거야”라는 기대가 남아있어 PER는 쉽게 꺾이지 않고, “그래도 이 정도면 고평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옵니다. 문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이익이 꺾이거나, 글로벌 변수(금리 급등, 환율·유가 쇼크)가 겹칠 때입니다. EPS 하향 조정과 동시에 PER 리레이팅(평균 수준으로의 복귀)이 한꺼번에 오며, 가격 조정 폭이 커질 수 있습니다. 이를 흔히 “이익과 밸류에이션이 동시에 맞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생기는 더블 펀치”라고 부르기도 하죠.
4. EPS 바닥 + PER 저평가: 장기 투자자에게 열리는 ‘체력 회복’ 구간
반대로 가장 탐나는 조합은, EPS가 이미 꽤 크게 떨어져 바닥 근처에서 더 이상 나빠지지 않는 신호를 보이고, PER는 역사적으로 낮은 구간에 머물러 있는 경우입니다. 그래프에서 보면, 파란 EPS 선이 아래쪽에서 옆으로 기는 모습(더 이상 떨어지지 않는 구간), 빨간 PER 선은 아래쪽 저평가 영역에 위치하고, 초록 코스피 선은 장기간 조정·횡보를 거친 뒤 바닥 다지기를 하는 그림입니다.
이때 투자 심리는 최악이기 쉽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조정 경험 때문에 “이제 주식은 끝났다”, “성장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나오기 쉬운 구간입니다. 하지만 EPS 하락폭이 줄어들고, 선행 지표가 개선되며, 일부 업종에서 이익 턴어라운드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이 구간은 장기 투자자에게 꽤 매력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신호를 실시간으로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PER 저평가 + EPS 하락 둔화”가 겹쳤던 과거 사례들을 그래프로 한 번 정리해 보면, 다음 사이클에서 비슷한 패턴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5. 엑셀로 직접 그려보는 ‘코스피·EPS·PER 삼중 그래프’
이제 실전입니다. 블로그 글이나 개인 투자 노트용으로 이 그래프를 직접 만들고 싶다면, 다음과 같은 순서로 데이터를 정리해 보세요. 첫째, 연도별(혹은 분기별) 코스피 지수와 코스피 전체 EPS 데이터를 모읍니다. 증권사 리포트나 거래소 통계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둘째, 각 시점에서의 PER를 “지수 / EPS”로 계산합니다. 셋째, 세 값을 모두 100 기준으로 지수화하거나, 지수·EPS는 왼쪽 축, PER는 오른쪽 축에 놓고 각각 선 그래프로 그립니다.
그래프에 IMF·글로벌 금융위기·코로나·최근 금리 인상기 같은 주요 이벤트 시점을 세로선과 옅은 음영 박스로 표시하면, “충격 이벤트 이전과 이후에 EPS와 PER가 어떻게 움직였는지”가 한눈에 보입니다. 몇 년만 되짚어봐도, “충격이 터지기 전에 PER가 이미 꽤 올라와 있던 구간”, “충격 이후에도 EPS는 꾸준히 올라 있는데 시장이 과도하게 저평가된 구간” 등 여러 가지 장면이 발견될 것입니다. 이 작업을 한 번만 해놓아도, 앞으로 뉴스에서 “코스피 PER 몇 배, EPS 전망 상향/하향” 같은 말이 나올 때, 훨씬 생생하게 와 닿게 됩니다.
결론: PER 숫자보다 ‘이익과의 거리’를 기억하자
코스피 PER·EPS 사이클을 함께 보면,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지수 숫자만 보고 시장을 판단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2500, 3000 같은 숫자는 헤드라인으로는 강렬하지만, 그 숫자만으로는 시장이 비싼지 싼지, 혹은 경기 사이클의 어느 국면에 와 있는지 정확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이익(EPS)이 어디까지 올라와 있는지, 그리고 투자자들이 그 이익에 대해 몇 배의 가격(PER)을 쳐주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한 정보입니다. 같은 2500이라도 EPS 200·PER 12.5배일 때와 EPS 300·PER 8배일 때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전 투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아주 거창하지 않습니다. 첫째, 코스피 차트를 볼 때 “지금 PER는 어느 구간인가?”를 같이 떠올리는 습관을 들이는 것. 둘째, PER만 보지 말고 “EPS 추세가 어떤 방향인지”를 함께 보는 것. 즉, “PER 높음/낮음”보다 “PER와 EPS가 어떤 조합으로 서 있는지”를 묻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PER가 높더라도 EPS가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직전인 구간이라면, 향후 이익이 확실히 늘어날 수 있는지 따져보고, 반대로 PER가 낮아 보여도 EPS가 길게 하락하는 업종이라면 “가치 함정(value trap)”일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사이클 후반부에서 “EPS 피크 + PER 고평가” 조합이 나오기 시작할 때, 포지션의 공격성을 조금씩 줄이는 전략을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때 모든 주식을 당장 팔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레버리지 비중을 줄이고, 이익이 이미 피크를 찍은 업종 비중을 낮추며, 현금·방어주·배당주 비중을 조금씩 늘려 두면, 이후 조정 구간에서 흔들리지 않을 안전벨트가 생깁니다. 반대로 “EPS 바닥 + PER 저평가” 조합이 나타나는 구간에서는, 공포가 한창 커져 있을 때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분할 매수를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핵심은 “PER 몇 배가 적정이냐”는 정답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PER와 EPS, 코스피 지수 세 줄을 한 번에 보는 눈”을 기르자는 제안에 가깝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연도별 PER·EPS·지수 그래프를 직접 그려 보면, 다음 번 사이클에서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을 때 훨씬 빠르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언젠가 또다시 “코스피 PER 역사적 고점”, “EPS 전망 하향” 같은 헤드라인이 쏟아질 때, 그저 겁먹거나 들뜨기보다는, 과거의 그래프를 떠올리며 “지금은 어느 조합에 가까운가?”를 차분히 물어보는 투자자가 되기를, 이 글이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