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은 ‘돈의 시간표’를 사고파는 자산이다. 표면금리로 정해진 이자가 일정 간격으로 흘러오고, 만기일에 원금이 돌아온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가 내리면 가격이 오르는 역학, 듀레이션과 컨벡서티로 측정하는 민감도, 신용등급과 스프레드가 붙는 위험 프리미엄, 수익률곡선의 기울기와 모양이 암시하는 경기 사이클까지 겹치면 이야기는 깊어진다. 그래서 초보자는 채권을 ‘예금과 비슷한 무풍지대’로 오해하기 쉽다.
이 글은 그 오해를 지우고, 만기·쿠폰·YTM(만기수익률)·듀레이션·수익률곡선이라는 다섯 개의 열쇠로 채권을 한 번에 이해하도록 돕는다. 더 나아가 개인 포트폴리오에서 채권이 맡는 역할—완충재·현금흐름원·리밸런싱 엔진—을 구체적 행동 규칙으로 번역한다. 사다리(Ladder)와 바벨(Barbell) 전략, 단기/중기/장기 듀레이션의 배합, 개별채권 vs 채권 ETF 선택 기준, 환헤지와 세후 재투자 루틴까지, 실전에서 바로 쓸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로 정리했다. 오늘 이 글을 마치면 “금리 뉴스가 무섭다”에서 “듀레이션을 이렇게 조절하자”로 관점이 바뀔 것이다. 결국 채권 투자의 본질은 금리의 ‘방향’을 맞히는 게 아니라, 내 자산의 ‘민감도’를 설계하는 일이다.

서론: 채권은 ‘시간·이자·신용’의 계약—가격과 수익률이 엇갈리는 이유부터 잡자
채권은 발행자(정부·회사)가 투자자에게 약속하는 계약이다. 약속의 뼈대는 세 가지다. 첫째, 만기(Maturity). 특정 날짜에 원금을 돌려준다는 약속이다. 둘째, 쿠폰(Coupon). 6개월 혹은 1년에 한 번씩 정해진 이자를 지급한다. 셋째, 신용(Credit). 약속을 지킬 능력과 의지를 등급으로 표현한다. 이 단순한 구조에서 ‘가격과 수익률의 반비례’가 탄생한다. 쿠폰과 만기에 의해 현금흐름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장금리가 오르면 동일 현금흐름의 현재가치가 내려가고, 반대로 시장금리가 내리면 현재가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채권 가격은 금리에 민감하다. 이 민감도를 수치로 표현한 것이 듀레이션(Duration)이다. 대략적으로 금리가 1%p 변할 때 가격이 몇 % 움직이는지를 뜻한다. 듀레이션은 만기가 길수록, 쿠폰이 낮을수록 커진다. 즉 ‘현금이 늦게 들어올수록’ 금리에 더 예민해진다. 여기에 곡률을 뜻하는 컨벡서티(Convexity)가 더해지면, 금리 큰 폭 변동 시 가격의 비선형 반응까지 설명된다. 또 하나의 필수 개념은 YTM(만기수익률)이다. 지금 가격으로 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들고 갈 때 기대되는 연평균 수익률로, 쿠폰과 자본손익을 모두 포함한다. YTM은 쿠폰률과 다를 수 있으며, 프리미엄(액면가 초과)이나 디스카운트(액면가 미만) 매입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신용 위험은 스프레드(국채 대비 가산금리)로 시장에서 가격이 붙는다. 같은 만기라면, 신용이 낮을수록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수익률곡선(Yield Curve)은 만기별 금리를 이어 그린 곡선으로, 정상(우상향)·평탄·역전 상태에 따라 경기 기대와 유동성 환경을 비춘다. 이 다섯 개념을 한 화면에 놓으면 채권은 ‘복잡한 금융상품’에서 ‘예측 가능한 현금흐름의 묶음’으로 변한다. 핵심은 금리를 맞히려 애쓰기보다, 나의 목적—안정·현금흐름·리밸런싱—에 맞춰 듀레이션과 신용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채권은 주식의 거친 파도를 건너게 해 주는 튼튼한 다리가 된다.
본론: 만기·쿠폰·듀레이션·수익률곡선을 실전에 연결하는 10문항 체크리스트
1) 목표와 제약부터—내가 채권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변동성 완화 B) 정기 현금흐름 C) 리세션 대비. 인출 시점·현금 필요시기·최대 드로다운 허용치를 먼저 적는다.
2) 만기(듀레이션) 결정—금리 레짐이 불확실하거나 변동성이 크다면 단/중기(듀레이션 2~5년)를 코어로, 금리 피크아웃이 가시화되면 중/장기(7~10년 이상) 비중을 늘린다. ETF라면 ‘평균 듀레이션’ 지표를 확인한다.
3) 쿠폰 vs YTM—쿠폰은 ‘현금흐름의 빈도와 크기’, YTM은 ‘전체 기대수익’을 말한다. 디스카운트 발행물은 쿠폰이 낮아도 YTM이 높을 수 있고, 프리미엄 채권은 그 반대다. 현금흐름이 필요하면 쿠폰, 전체 성과는 YTM을 본다.
4) 신용·스프레드—국채(무위험지표)에 신용프리미엄을 더한 것이 회사채 수익률이다. 경기 둔화기에 하이일드(저등급) 스프레드는 급격히 벌어진다. 초보자는 IG(투자등급) 중심, 하이일드는 분산 ETF로 제한하고 비중 상한(예: 10~15%)을 둔다.
5) 수익률곡선 읽기—정상곡선(우상향): 성장 기대, 단기채보다 장기채 금리↑. 평탄: 전환기, 듀레이션 과다 노출 주의. 역전: 긴축·경기 둔화 신호, 장기채는 방어 역할을 할 수 있으나 변동성 증가에 대비. 곡선 스티프너/플래트너 뉴스는 듀레이션 미세조정의 힌트다.
6) 사다리·바벨·불릿—사다리(Ladder)는 만기를 고르게 분산해 재투자 타이밍 리스크를 낮춘다. 바벨(Barbell)은 단기+장기를 섞어 ‘유연성+방어’를 동시에 노린다. 불릿(Bullet)은 한 구간에 집중해 특정 시점 현금흐름을 맞춘다. 목적에 맞게 선택하자.
7) 개별채권 vs 채권 ETF—개별채권은 만기보유 확정성이 장점이나, 매수단가·분산·거래비용의 제약이 있다. ETF는 분산·유동성·자동 롤오버가 장점이나, 가격 변동을 감수해야 한다. 초보자는 코어를 저보수 종합채권 ETF로, 필요 시 위성으로 특정 만기/신용/국가 ETF를 얹는 구성이 효율적이다.
8) 환헤지·통화—해외채권·글로벌 ETF는 환율 변동이 성과에 영향을 준다. 생활통화와 현금흐름 통화를 고려해 비헤지·부분헤지 정책을 문서화한다. 환율 판단이 아니라 ‘일관된 비중’이 중요하다.
9) 리밸런싱 규칙—분기 점검+±5% 밴드로 주식/채권 목표비중을 유지한다. 금리 급변 주간(FOMC·CPI)에는 신규 베팅을 보수화하고, 현금유입(배당·급여)으로 먼저 보정한다. 채권은 주식 급락 때 자연스레 비중이 커질 수 있으므로, 그때 일부 매도해 주식을 사는 ‘자동 매수 자금’ 역할을 맡긴다.
10) 실행 체크리스트(복붙)—① 코어: 종합채권 ETF(듀레이션 5~7년, 투자등급) ② 위성: 단기국채/장기국채/회사채/물가연동/하이일드 중 1~2개 선택 ③ 비중: 코어 70~80%, 위성 20~30%, 하이일드 상한 10~15% ④ 캘린더: 3·6·9·12월 둘째 주 금요일 점검 ⑤ 리스크: 듀레이션 목표 범위(예: 3~7년) 유지 ⑥ 비용: 총보수·스프레드 정기 확인 ⑦ 기록: 듀레이션·YTM·스프레드·환정책을 노트 상단 고정.
결론: 예측 말고 설계—듀레이션·스프레드·리밸런싱으로 ‘채권의 힘’을 복리에 연결하자
채권을 잘 쓰는 방법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첫째, 듀레이션을 목적에 맞게 고정한다. “내 포트폴리오 듀레이션은 4~6년 범위를 유지한다” 같은 한 줄이 필요하다.
둘째, 신용 스프레드를 과하게 좇지 않는다. 평온기에는 수익률이 달콤해 보여도, 스트레스 국면에서의 드로다운과 유동성 리스크가 대가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투자등급 중심의 코어를 유지하고, 하이일드는 얇게, ETF로만, 캡을 씌운다.
셋째, 리밸런싱으로 자동 매수/매도 시스템을 만든다. 주식이 급락하면 채권 비중이 커진다. 그때 채권 일부를 팔아 주식을 사는 행동을 분기 점검일에 자동화한다. 이 습관이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다.
넷째, 환율·세후·비용 같은 보이지 않는 마찰을 줄인다. 환헤지 비율을 문서화하고, 배당·쿠폰은 지급 후 3영업일 내 코어에 재투자한다.
마지막으로 선언하자. ① “나는 듀레이션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다.” ② “스프레드를 과도하게 추격하지 않는다—하이일드 상한 10~15%.” ③ “분기+±5% 리밸런싱, 현금유입 우선 보정.” 이 세 줄을 투자노트 첫 페이지에 붙이면, 금리 헤드라인이 요란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채권은 미래를 점치는 도구가 아니다. 내 포트폴리오의 감도를 설계하는 도구다. 감도가 안정되면, 복리는 조용히 일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안다. 채권은 ‘안전하다’가 아니라 ‘예측 가능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진짜 안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