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를 모르면 ‘많이 담을수록 안전하다’는 막연한 믿음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정 지점까지만 위험이 빠르게 줄고, 그 이후에는 관리비용과 집중도 저하가 이익을 갉아먹는다. 이 글은 초보 투자자가 “몇 종목이 적절한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실전적으로 답하도록 설계되었다.
체계적 위험과 개별 기업 위험의 차이, 상관관계가 분산효과에 미치는 영향, 포지션 사이징과 리밸런싱 규칙, 섹터·스타일·지역의 분산 축을 하나씩 연결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보유 개수를 스스로 계산하도록 돕는다. 핵심 요약은 이렇다. 개별주 중심이라면 8~12개로 시작해 상한 20~25개 내에서 운용하되 섹터·팩터 겹침을 반드시 점검한다.
ETF 중심이라면 3~6개면 충분하며, 시간이 거의 없다면 광범위 지수 1~2개만으로도 훌륭한 장기 포트폴리오가 가능하다.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규칙이다. 종목당 비중 상한, 손실 한도, 리밸런싱 주기와 트리거를 문서로 못 박아야 분산이 ‘형식’이 아니라 ‘효과’가 된다.

서론: 분산은 ‘몇 개 담았나’가 아니라 ‘어떻게 다르냐’의 문제다
분산투자는 흔히 ‘달걀을 여러 바구니에 담아라’로 설명된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바구니 수만 늘리면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바구니 모양이 모두 같다면, 즉 같은 섹터·같은 스타일·같은 지역·같은 이익 드라이버에 의존한다면 바구니가 열 개든 스무 개든 큰 조정 때는 하나처럼 흔들린다.
그래서 분산의 본질은 ‘종목 수’가 아니라 ‘상관관계’다. 서로 다른 원인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조합할수록 변동성은 빠르게 낮아지고, 포트폴리오의 최악의 날을 완화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목을 늘릴수록 분석과 모니터링에 드는 시간, 거래비용, 주의력 분산, 결단 지연 같은 보이지 않는 비용도 함께 커진다. 초보에게 과도한 종목 수는 규칙 준수율을 떨어뜨리고, 책임 소재가 흐려져 복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는 두 개의 곡선—‘위험 감소 곡선’과 ‘관리 비용 곡선’—의 교차 지점을 찾아야 한다. 경험적으로 개별주 투자에서 위험은 8~12개 사이까지 급격히 낮아지고, 이후에는 체계적 위험(시장·금리·환율 같은 거대한 파도)이 지배한다. 반면 ETF는 본질적으로 수십~수백 종목을 내부에 담고 있어 외형상 1~2개만 보유해도 실질 보유 수가 이미 수백 개가 된다. 따라서 투자 시간과 숙련도, 계좌 규모, 국적·세금 환경에 따라 ‘적정 개수’는 달라진다.
이 글은 바로 그 맞춤형 의사결정 틀을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분산은 손실을 없애는 마법이 아니라,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기술임을 기억하자. 손절 규칙·현금 비중·비중 상한이 함께 작동할 때 비로소 분산은 제 힘을 낸다.
숫자만 채우는 분산은 위기를 늦출 뿐 막지는 못한다.
다르게 움직이는 것들을, 적절한 비중으로, 규칙에 맞춰, 꾸준히 재정렬하는 것—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분산이다.
본론: ‘적정 보유 수’를 정하는 7단계 프레임—종목 수, 비중, 리밸런싱까지
첫째, 목적과 제약을 명확히 한다.
목표 수익률과 감당 가능한 최대 낙폭(MDD), 투자에 쓸 수 있는 주당 시간, 계좌 규모를 적는다. 시간이 하루 15분 이하라면 개별주 20개는 불가능하다.
둘째, 자산 유형을 결정한다.
ETF 중심이면 3~6개로도 세계시장을 폭넓게 담을 수 있고, 개별주 중심이면 8~12개 코어에 3~5개 위성(satellite)을 더해도 충분하다.
셋째, 상관관계를 관리한다.
같은 반도체 대형주 다섯 개는 ‘다섯 종목’이 아니라 사실상 ‘한 베팅’이다. 섹터(산업), 스타일(밸류·모멘텀·퀄리티·소형주), 지역(한국·미국·기타), 통화(원·달러), 이익 드라이버(가격·수량·ARPU·구독전환), 규제·정책 민감도 등 분산 축을 표로 만든다.
넷째, 비중 규칙을 정한다. 초보는 1/N이 단순하고 강력하다.
숙련자는 코어·위성 구조(예: 코어 70%—광범위 지수/배당/퀄리티, 위성 30%—테마/모멘텀/특정 아이디어)로 집중과 분산의 균형을 잡는다. 종목당 비중 상한은 10~15%, 이벤트 종목은 5% 이내를 권한다.
다섯째, 포지션 사이징을 위험 기준으로 바꾼다.
‘계좌 1% 손실 한도’ 원칙을 적용해 손절가 기준 주식을 역산하면 종목 수와 비중이 자연히 조정된다.
여섯째, 리밸런싱 주기와 트리거를 정한다. 분기/반기 주기 + ‘5%포인트 이상 이탈’ 혹은 ‘상대 비중 20% 이상 변화’ 같은 규칙을 써 두면 감정 개입이 줄어든다.
일곱째, ‘유효 보유 수(ENB)’를 점검한다.
겉으로 15개라도 비중이 40/5/5/…로 치우치면 실질 분산력은 6~8개 수준에 그칠 수 있다.
간단히는 헤르핀달 지수(∑w²)의 역수로 대략 추정할 수 있고, 더 엄밀히는 상관관계를 반영하지만 초보는 ‘비중 상한+섹터 겹침 금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구체 가이드를 제시한다. ①개별주 중심 초보: 8~12개로 시작하되, 동일 섹터는 3개 이내, 동일 팩터(예: 고성장 적자주)는 30% 이내, 종목당 10% 상한. ②경험자/아이디어 다변화: 12~20개, 코어 60~70%(배당·퀄리티·지수), 위성 30~40%(테마·사이클), 리밸런싱 분기 1회. ③ETF 중심 장기: 3~6개—전세계 주식형 1~2, 지역/스타일 1~2, 채권/현금성 1~2, 필요시 리츠·원자재 0~1. ④시간 거의 없음: 광범위 지수 1~2개 + 자동이체, 연 1~2회 점검.
피해야 할 함정도 명확하다.
첫째, ‘가짜 분산’: 이름만 다른데 안을 뜯어보면 같은 기업군을 담은 ETF/종목의 중복 보유다. 구성 종목 상위 10개와 섹터 비중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자.
둘째, ‘콩알 포지션’: 30개 이상을 소량 보유해도 기록·학습이 남지 않는다. 과감히 정리하고 핵심에 집중하라.
셋째, ‘리밸런싱 없음’: 분산은 정적 상태가 아니라 동적 과정이다. 비중이 쏠리면 수익이 나도 리스크는 폭증한다.
넷째, ‘현금 비중 0%’: 급락 때 투입할 여지를 남겨야 분산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분산은 심리 장치다. 한 종목의 급락이 포트폴리오 전체를 흔들지 않도록 미리 완충재를 넣는 일, 그것이 분산의 가장 인간적인 효용이다.
결론: 숫자보다 규칙—8~12개(개별주)·3~6개(ETF)·1~2개(초간단), 그리고 꾸준한 재정렬
우리는 이제 ‘몇 종목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단 하나의 숫자로 답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계좌의 크기, 투자 시간, 숙련도, 선호하는 리스크, 세금과 환율 환경에 따라 정답은 달라진다. 그럼에도 실전에서 작동하는 범위는 있다. 개별주 중심 초보라면 8~12개 코어 보유가 빠르게 위험을 낮추는 구간이며, 상한 20~25개를 넘기면 관리 비용이 효과를 잠식하기 쉽다. ETF 중심 장기 투자라면 3~6개면 충분하고, 바쁘다면 광범위 지수 1~2개와 자동이체만으로도 시장의 복리를 훌륭히 수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표지판일 뿐, 길을 끝까지 데려다주지는 않는다. 길을 만드는 것은 규칙이다. 종목당 비중 상한, 계좌 1% 손실 한도, 리밸런싱 주기와 재조정 트리거, 섹터·팩터 겹침 금지—이 네 가지를 문서로 못 박아두면 분산은 ‘많이 가진다’에서 ‘잘 가진다’로 바뀐다. 또 하나, 기록하라. 분산을 바꾼 날과 이유, 상관관계를 오판한 사례, 리밸런싱이 계좌 변동을 얼마나 낮췄는지의 체감 메모가 쌓이면, 당신만의 적정 개수가 자연스럽게 수렴한다. 결국 분산의 목적은 단기간의 극적 수익이 아니라 장기간의 생존과 꾸준한 복리다. 우리는 내일도 시장에 있어야 한다. 8~12개, 3~6개, 1~2개—당신의 시간과 성향에 맞는 표지판 하나를 선택하라. 그리고 정해진 속도로, 정해진 주기로, 조용히 재정렬하라. 분산은 화려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장 멀리 데려다주는 기술이다.